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선왕인 영조의 둘째왕자로 세자에 책봉돼었어나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 화산으로 천봉하고 화산부근에 있던 읍치를 수원의 팔달산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수원화성(水原華城)은 87만 3,520냥이 소모되었습니다...그리고 축조할 때에는 강제적인 노역이 아니라 품삯을 받아서 일을 하였는데..이것은 강제적으로 백성들을 동원하는 시대가 아니라 품삯을 주고 고용하는 시대였음을 말하는 것입니다.